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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편지 / 이기철

은월 김혜숙 2016. 5. 8. 20:10

삼동편지 / 이 기철

 

아무에게도 편지 않고 석달을 지냈습니다

내 디딘 발자국이 나를 버리고

저 혼자 적멸에 들었나 봅니다

그 동안 마음에 서까래를 걸고

춘풍루 한 채를 지었다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세간이라  이른다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그 깊은 골짜기에 내려서지 않으면

어찌 먼지 낀 세간이 보이겠습니까

 

전화가 울릴 때 마다 귀는 함박꽃 같이 열렬했지만

마음의 회초리 열 번 쳐 세상의 풍문에 등 돌렸습니다

법어를 읽다가 주장자를 부러뜨린 선승이 계신다구요?

물소리를 가르고 그 속에 뼈를 세우기가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기와 같다구요

 

세상이 날려 보내는 말들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힐 때 마다 자갈돌 쌓아올려

석탑을 이루는 석공의 인고를 생각했습니다

 

오래 소식 주지 마셔요

깊을대로 깊은 병이 암을 지나

보석이 될 때가 오면 햇빛같이

사실적인 편지 드리겠습니다

자꾸 인생무상이라고 쓰려는 마음을

꾸짖으며 추운 가지에 둥지 튼 새를 쳐다봅니다

또 소식 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