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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문학상 전집 발간 관련 논쟁(옮겨 온글)

은월 김혜숙 2017. 10. 13. 13:37

미당문학상과 <미당 서정주 전집> 발간 관련 논쟁!!

기념해야 할 존재인가,

기억해야 할 존재인가?

 

미당의 문학과 행적에 관한 논란은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미당에 관한 논쟁이 수면 위로 오르게 된 일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한국작가회의에서 관련 토론회도 있었으나, 직접적인 영향을 준 계기는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던 김혜순 시인이 5.18문학상 본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벌어진 논란이었다. 시인 스스로 정중히 사양한다고 함으로써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이후 2017년 미당문학상 후보들이 거론될 무렵 다시 논란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특히 미당문학상 후보를 거절한 송경동 시인의 글이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면서 미당문학상과 관련된 논란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나아가 최근 20권에 달하는 <미당 서정주 전집>이 완간되면서 그 열기가 한층 달아오르고 있다. 그동안 미당과 관련한 논쟁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려왔다. 앞으로 이어질 논쟁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번 대담이 그 디딤돌을 마련할 수 있었으면 한다. (김태선)

김태선 오늘날 미당에 관한 논쟁은 세 가지 문제로 집약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미당의 역사적 행위와 그의 문학을 어떻게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다른 하나는 미당문학상 제도에 관한 논란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는 논쟁이 유통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2000년 미당 사후부터 끊이지 않고 논의되어왔으나 해결점을 찾지 못한 문제입니다. 미당의 문학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역사적 과오와 흠결은 있으나 문학은 그 자체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요. 비판적인 생각을 하는 측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윤리와 정치적 문제는 그의 작품과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바꿔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와 ‘시인’을 분리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은데요.

 

이영광 미당 시의 목소리 주인인 시적 주체는 그렇게 투명한 존재가 아닙니다. 시인이 창작을 하는 과정에는 시와 시인의 상상적 불일치를 허용하는 복잡다단한 계기들이 작용합니다. 미당 시의 뛰어난 성취는 우리 시의 상상력을 경험적, 의식적 한계 너머 무의식의 차원으로 밀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우리 시에 없던 낯선 목소리의 출현을 초기 시에서 접하게 되는데요. 그런 작업을 수행할 때 미당 개인과 그의 시적 주체 사이의 괴리와 간극을 보게 됩니다. 플라톤 식으로 말하면 ‘미친 시인’의 상태와 비슷한 것인데, 그 층위에서 생각하면 결코 시와 시인은 분리되지 않고, 바로 그런 층위에서 작업했기 때문에 미당은 새로운 시를 쓸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동시에 무의식적 무대에서 활동하다 보니 그것이 하나의 체질이 되어서, 현실에서는 규범적 의식이 약화되었고, 쉽게 보아 넘기기 어려운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합니다.

 

이명원 미당의 문학은 작가론적 견지에서 검토해야 합니다. 저는 미당문학상이 처음 만들어진다고 할 때 비판적 견지의 글을 썼습니다. 미당의 시에는 초기부터 후기까지 하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하늘은 결국 죽음의 미학과 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미당은 <마쓰이 오장 송가>(松井 伍長 頌歌)에서뿐만 아니라 산문, 소설 등을 통해 파란 하늘 속에서 소멸한다는 것이 가지는 마술적인 신비를 제창하고 있거든요. 미당은 하늘의 성격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시인이 특정한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변주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무의식의 형태로 나온다고 할지라도 의식화되어야 하는데 미당은 그 의식화를 회피함으로써 시를 애매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문학상과 같은 제도는 미당 문학을 한국 문학사 안에서 매우 중대한 것으로 기입하는 행위입니다. 미당의 족적을 보면 저는 미당이 단순한 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당은 자신은 시인일 뿐이라며 스스로를 방어하는데 실질적으로는 정치 지향성이 강하고 당파성이 강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일제말기 대일협력뿐만 아니라 한국 시에 대한 여러 형태의 오인을 초래하게 한 당사자가 미당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당이 문교부 편수과장이 되고 나서 만들어진 국어 교과서는 청록파, 생명파, 순서정파들만 주류로 기입했습니다. 한국인들은 교과서를 통해 최초로 시를 접하는데 이것이 시에 대한 오도된 경향을 초래했다고 생각하거든요. 미당은 국면마다 당대정권과 전혀 불화하지 않았어요. 이승만에 대한 전기를 자청해서 썼고, 5.16군사정변 이후 1962년에는 五月文藝賞을 받아요. 박정희 정권하에서 문예협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전두환 정권에 가면 노골적으로 송축 시를 쓰기도 하지요. 미당에게는 하늘이 비어 있는 중심이에요. 하늘이라는 이미지에 일본의 천황,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얼마든지 기입될 수 있습니다. 미당은 무의식적인 욕망의 주체라기보다는, 의식적으로 자기 문학과 정치적 행적을 결합시킨 사람으로 봐야 합니다. 그의 문학을 현실 속에서 거대 언론사가 제도화해서 문학사적으로 기리는 것은 한국 문인들의 문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구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황규관 제 경험으로는 ‘시와 시인을 분리하는 게 가능한가’라는 명제 자체가 틀렸다고 봐요. 시인의 삶을 비판할 때 시인의 인격과 도덕 감정을 비판하는 게 아니란 말이죠. 시 자체는 시인의 삶의 한 층위일 뿐이에요. 그 자체가 시인의 삶 중 일부라는 거죠. 미당이 무의식적인 세계의 시를 광기 어리게 썼다고 하는데 그것 또한 신비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현식 미당은 생각보다 치밀하고 계획적인 시인이었다고 생각해요. <질마재 신화>를 거쳐서 <서으로 가는 달처럼>, <80소년 떠돌이의 시>까지 가면 거꾸로 그 죽음 속에서 영원한 삶을 보고자 했습니다. 미당은 하나의 커다란 이념, 정치적 성향보다는 자신이 꾸준히 밀고 나가는 지점이 있었다는 것, 그런 부분에서 현대사와 마주쳐야 했던 부분, 자기가 했어야 했던 역할도 있을 겁니다. 친일 시를 쓴 것을 ‘종천순일’이라고 한 것도 이와 관련되지 않을까 합니다. 혹은 일제의 힘과 전세를 판단했을 때 이쪽이 더 오래갈 것 같았고 그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고 얘기했죠. 현실과 타협적이고 낭만적인 모습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과서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한 개인이 시대를 감당해야 하는 몫은 다른 차원들과 비교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념이 한 개인을 옥죄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 시와 시인의 삶에 어떻게 개입하는지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황규관 원론적으로 미당이 독립투사가 되어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한 개인마저도 역사적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내면이 형성된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그 정도로 예민한 사람이었다면 일제강점기라든가 권력이 바뀔 때마다 보여줬던 모습은 회피 아니면 순응으로밖에 볼 수 없어요. 심지어 미당이 시대를 고민하는 방식은 일단 없어요. 반공주의도 말할 수 없이 비천해요. 미당이 사회주의자이거나 민족주의자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에요.

 

이영광 미당 시를 옹호하는 분들도 미당의 삶과 인격에 미흡한 면이 있다는 걸 인정합니다. 미당은 옛날 사람이고 현대성의 첨예한 국면을 이해한 시인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시대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동시에 체제 순응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그 배후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 미당은 무속적 정신 현상에 친숙한 사람이었고, 무속의 전통과 문화에 정신의 뿌리를 둔 사람이었습니다. 무속은 인간 삶의 문제들이 바깥의 힘에 의해 비롯된다고 보고, 어쩔 수 없는 바깥의 힘에 대해서는 ‘적응’이라는 태도를 취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의 정신분열은 무의식의 힘을 불러와 뛰어난 시를 낳은 요인이 되었지만, 동시에 현실 권력에 굴종하는 삶을 낳기도 했습니다. 못난 행적과 시의 남다른 성취는 한 뿌리의 두 가지 아닐까 해요.

황규관 뛰어난 시라는 관점부터 다시 정리해봐야 하는데요. 연구자적인 관점에서는 그럴 수 있고 좋은 발견이라고 봅니다. 무속적인 세계를 에토스(ethos)로 갖든 그 자체가 무의식이 되었든 간에 뛰어난 시를 써주었다고 하는데, 미당 시에 현재성이 있다고 할 수 있나요?

 

최현식 미당만큼 자기 시 세계를 한 군데 고정시키지 않고 끊임없이 실험하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서며 말의 형식을 바꿔 나갔던 시인이 우리 시사에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습니다. <화사집>과 <신라초>와 <질마재 신화>를 비교하면 명확하게 그 목소리들이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현실을 얘기하지만 현실을 얘기하지 않는 이상한 상태, 신비주의에 빠지는 측면도 있는데 그렇다 치더라도 미당만큼 자기 시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다른 모습을 보여준 시인은 많지 않다는 점, 실험성의 측면, 시 세계를 넓혀 나간 부분은 여전히 현재적인 부분에서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명원 작가론적 견지에서 미당의 시어들은 매우 이완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한 시인이 다음 시집으로 넘어가는 변주, 연속과 단절 차원에서 보는 것은 문학연구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토대지만 거기에서 끝나면 안 되고 맥락화되어야 합니다. 시 자체만 보면 미당은 무욕의 시인 같기도 하고, 마성적인 욕망으로 들끓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런 이미지로 고정되는데요. 그걸 확대해 작가의 삶과 문학 전체를 보자는 거죠.

 

황규관 미당 시에 실험성이 있다는 것은 뜻밖의 해석 같습니다. 연구자 입장에서는 형태소, 표현이나 비유의 변화, 소재의 다른 면을 실험성이라고 볼 수 있지만 창작자가 보기에는 굉장히 나이브합니다. 미당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락과 토속성이 선천적으로든, 유년 시 겪었던 고향의 에토스로든 간에 결합되어서 어느 시점부터 굉장히 나이브한 자세를 취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영광 미당의 일차적인 기여는 한국 시의 활동 무대를 무의식으로 넓혀 나갔다는 겁니다. 예전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잘 알지 못했던 쪽으로 넓히거나 깊이를 더해가는 시도가 있었다고 보는데요. 하늘의 모호성, 지나친 관념성, 신비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겠지만 다른 속성의 것들도 하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명원 미당이 쓴 산문들을 보면 결국 하늘은 죽음이에요. 미당은 죽음을 충동하는 시인이라는 거죠. 특히 그의 친일산문 <스무살 된 벗에게>를 보면 하늘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강조되고 있어요. 문제는 오늘날에도 미당 전집의 편집자들이 숨기고 싶은 부분은 삭제한다는 거죠. 이 산문이 왜 중요하냐면 초기 미당의 시적 출발점이 거기 있어요. 하늘의 이미지, 죽음의 이미지, 욕망의 이미지들이 그 이후에 변주된단 말이에요. 그 기원을 삭제해버리면 일반 독자 입장에서는 교과서 해설자 수준에서 미당에 대한 정보를 취합할 수밖에 없거든요.

 

최현식 하늘과 바다는 서정주의 시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납니다. 친일 시에서의 하늘의 이미지가 천황을 내면화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서정주 시에서 하나의 변형과정입니다. 하나의 모티프가 무엇하고만 연결되어 있다고 규정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죠. 더군다나 하늘이나 죽음과 같은 아주 보편적인 것은요.

황규관 저는 미당의 ‘하늘이나 죽음’이 신비주의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미당이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시를 쓴 시인이라고 평가한다면 ‘하늘과 죽음’은 무의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볼 때 참조사항은 된다고 봅니다. 그 시절이 그랬으니까요. 지금은 미당의 작품과 행적이 미심쩍다, 문제가 있다고 제기되는 순간이잖아요. 미당이 그 시절에 살았던 것은 분명한데 당시 역사와 시대 조건들을 어떻게 받아들였느냐고 본다면 이 기원의 개념은 참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영광 간접적이고 암시적인 방향으로 투영되었겠죠. <화사집>에 24편의 시가 실렸는데, 하늘이 여러 번 나와요. 그것과 친일 시에 등장하는 하늘의 연속성이 분명 존재할 거예요. 하지만 이후의 미당 시에서 하늘은 다양하게 변주되고 동시에 심화, 확장됩니다. 미당이 불교 우주론을 가지고 와서 하늘을 상상적으로 설계하는 복잡하고 넓은 과정이 이어지지요.

 

김태선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에도 하늘이 등장하죠. 이 시는 자신에 대한 변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말씀하신 대목에서 살펴봐야 할 지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미당문학상 문제를 다루도록 하죠. 상이 제정될 당시부터 논란이 있었습니다. 거대 재벌과 보수언론이 함께 역사적 행각에 논란이 있는 인물의 이름으로 문학상을 수여하게 된 배경을 문제 삼는 목소리들이 들려왔어요. 수상자들을 상금으로 옭아매서 볼모로 삼으려는 것 아닌가하는 지적도 있었죠. 그 밖에 문학상에 관한 담론이 유통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들도 있습니다.

 

최현식 그 논의 중 가장 치졸하고 시인들을 옭아매는 비판 중 하나가 상금을 가지고 시인들을 꾄다는 말입니다. 그건 함부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닙니다. 실제 수상한 시인들을 보면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는 시집을 낸 사람들이고 직업도 안정적인 교수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거꾸로 물욕보다는 명예욕이 됩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공법으로 치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 인간을 초라하게 만들고 몰아가서 이 상은 문제가 있다고 하는 담론이 유통되는 방식에 대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황규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명예와 물욕은 뗄 수 없죠. 수상자가 대학교수라 하더라도 적지 않게 들어오는 목돈에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고 봅니다. 물욕은 자기가 추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명예와 같이 따라오는 것이죠. 일각에서 보았을 때 그것을 비난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상을 제정한 중앙일보사의 의도가 더 중요하다고 봐요.

 

최현식 항상 나오는 얘기가 3,000만 원짜리 상을 탈 수 있는 기회를 거부했다고 하잖아요. 이 말은 위험한 말이에요. 모든 문학상에 해당될 수 있어요. 제일 좋은 방법은 프랑스의 공쿠르 문학상(Prix Goncourt)1)처럼 상금을 확 줄이는 겁니다.

 

 

1) 프랑스 작가 에드몽 드 공쿠르(Edmond de Goncourt)의 유언에 따라 1903년 제정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상금은 10유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