銀月(은월) 시 ##스튜디오
종로거리에서 본문
시멘트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누군가 뿌려준 모이를 먹는 비둘기
길가 화단에 집 나온 노숙의 여인
옛 화신백화점 터라고 적어있는
표지석을 바라보았다
.
1970년 후반 입시 공부에 매달려 방가 후 달려와
노트가 구멍 나도록 받아쓰고 야밤이 되어야
우르르 나오면 귀가 버스 타기 전쟁
.
이엠 아이 학원도 상아탑 학원도
와이엠씨에이 학원도 피로에 쌓여
그날을 신음한 소녀시대
그때 뿌려둔 꿈이 어딘가에서
자라 늙어 있을 텐데
.
아니 벌써 죽어버린 꿈도
그때 이미 찾아간 꿈 일수도
또 그 꿈 잃어버려 고아로 떠돌다
그때를 못 잊어 노숙 삶으로
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
내 청춘이 이 거리에서 헐떡거리며 입시와
싸우던 때를 까마득히 잊고 있을 이쯤
2023년 거리는 지금 그때의 뽀얀 거리를
내 시아를 걷어내더니 직장인 거리로 바뀌고
점심시간이면 줄 서서 기다리며
때론 커피컵을 물고 다니는 청춘을 본다
.
내 머릿속의 종로엔
내 눈 안에 종로버스 정류장에서
받은 쪽지 편지 주고 간
그 소년도 학원가 분식 센터 디제이 오빠도
가슴 두근대던 팝송도 다 오랜 시간으로 겹치고
.
거리나 빌딩 숲은 가슴 안으로 꽉 차 버려
시대적 과도기 안에서 숨어 살아 내었고 있었음을
내가 가끔 협회 일로 종로에 나오면 툭 나와서 말 걸곤 한다
.
이제 흐린 기억 속 어설픈 거리요
내가 살다 간 역사 깊은 정글과 깊은 샘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