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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

시인의 악담

은월 김혜숙 2015. 6. 17. 22:29

● '시인의 악담'(길 위의 이야기)

 

 

김수영 시인1968년 6월 16일, 시인은 만취한 상태에서 버스에 치어 서대문 적십자 병원으로 옮겨져 사망했다. 사망하기 직전, 그는 당시 갓 데뷔한, 그러나 나이는 동갑인 한 소설가에게 시비를 걸었었다. 소설가에게 ‘딜레탕트’라며 욕을 퍼부었다고 하는데, 시인의 그러한 취중 폭언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상처받은 동료문인이 그 당시 수두룩했다. 짐짓 모욕이 될 수도 있는 그 말에 소설가는 껄껄 웃으며 자신의 외제 승용차로 모시겠다고 했다니 그게 시인에 대한 존경의 염인지, 태생적 관대함의 발로인지 나로선 알 수 없다. 아무튼 혁명과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일상에선 갓 태동하려는 어설픈 근대자본주의국가의 치졸함과 훈육된 식민성에 대한 분노를 자기 파괴로 표출했던 시인이 그렇게 갔다. 이른바 ‘시의 신화’가 된 그이지만, 그를 생각할 때마다 만약 내가 그와 같은 시대, 같은 또래로서 시를 쓰는 사람이었다면 서로를 어떻게 대했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가 나를 욕하고 내가 그를 보듬거나, 혹은 그 반대였을 수도 있을 상황. 그는 나의 친구였을까 적이었을까. 나는 그에 비해 시적으로나 악담 수위로나 여전히 하수일 수밖에 없는, 그저 언저리에서 기생하는 ‘문학모리배’에 불과했을까. 해마다 그가 떠오르는 6월 16일, 하루 늦게 그에 대해 쓴다. (강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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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의 파수병'

- 김수영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해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늦은 거미같이 존재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와양만이라도 남들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국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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