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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 “한국문단 ‘작가의식’ 사라졌다”

은월 김혜숙 2017. 8. 1. 11:24

소설 <만다라>로 유명한 원로작가 김성동(70) 선생이 한국문단의 작가의식 실종을 강하게 비판했다. 대하소설 <국수>의 증보완결판 탈고를 서두르고 있는 선생은 최근 ‘문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란 한 나라의 말과 정신을 지키는 사람들인데, 그런 생각을 갖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이어 “하루가 다르게 부박해져가는 문화적 풍토 속에서 아름다운 우리 지명과 말투, 정신이 실종돼가고 있다”며 “이것들을 지키기 위한 작가들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문학뉴스’가 김선생의 양평 거처를 찾아가 나눈 하일한담(夏日閑談) 첫회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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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더운데….”

 

 

칠순의 노 작가는 삼복 더위를 뚫고 찾아온 ‘문학뉴스’ 취재진을 한편으로는 반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안쓰럽게 생각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미리 기별은 하고 갔지만, 평소 외지인의 방문이 거의 없는 용문산 자락 비사란야(‘절 아닌 절’이라는 뜻을 지닌 김성동 작가의 처소)까지 카메라를 대동한 취재진이 찾아온데 대해 조금은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술잔을 앞에 두지 않은 인터뷰’가 언제 선생에게 익숙했으랴…

 

 

“요새 어떻게 지내시느냐?”는 의례적인 인사로 말문을 열자 작가는 “이 산골에 무슨 일이 있겠어”라고 멋쩍게 답했다. 그러더니 금세 익살스런 미소와 함께 “그러고 보니 한가지 일이 있긴 있네. 누가 내 앞으로 되지도 않은 책을 보내 왔길래 그걸 짝짝 찢어버렸지”라고 덧붙였다.

 

 

누군가의 책을 실제로 한 장 한 장 찢어버렸는지, 혹은 통째로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무언가 매우 못마땅한 일이 있었던 것만은 틀림 없어 보였다. 책을 보내왔다는 이는 놀랍게도 이름을 대면 바로 알만한 대중작가. 김 작가와 비슷한 시기에 등단해 활동하기도 했고, 한때 동년배 소설가과 같이 ‘70년대 작가군’으로 분류되기도 한 인물이다.

 

 

“작가란 한 나라의 말과 정신을 지키는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이 종편 같은데 나가 재롱이나 떨면 꼴이 뭐가 되겠나?”

 

 

조금 전의 익살스런 표정은 간데 없고, 서릿발 같은 질타가 이어진다.

 

 

“나는 그 사람이 여기 저기 다니면서 내 이름을 파는 것도 마땅치가 않아. 가는데마다 자신이 가장 친하게 지내는 문인이 나와 송기원이라고 떠들고 다니는데 그게 다 속보이는 수작이지. 나는 종교인 출신이고, 송기원은 운동권 출신이니, 자신이 ‘정신’과 ‘짱돌’ 양쪽을 끼고 있다는 걸 과시하자는 심산 아니겠어?”

 

 

당사자가 들으면 얼굴을 붉힐 만한 발언. 그러나 선생의 시비 분별에는 거침이 없다. 딱딱해진 분위기도 녹일 겸 선생에게 문단야사 한 토막을 부탁했다. 젊은 시절의 김성동 선생은 문단의 소문난 주호(酒豪)였던만큼 그가 가는 곳마다 문단의 뒷얘기가 피어났다.

 

 

 

 

 

“문단야사 하면 돌아가신 이문구 선생(1941~2003)을 따라갈 사람이 없지. 한번은 이선생과 송기숙 선생(1935년생)이 술자리에서 서로 가문 자랑을 했어. 한산 이씨나, 여산 송씨 둘 다 명문가이다 보니 얘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거라. 그러던 중 송선생이 ”우리 집안에서 왕비를 얼마나 배출했는지 알아?“하고 자랑했어.그때 이 선생이 점잖게 한마디 했지 ‘히힝.. 납품업자?’ 그걸로 끝!”

 

 

이문구 선생이 작고한 이후에는 문단 주변에서 이런 입담을 찾아 볼 수 없게 됐다고 작가는 아쉬워했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며 선배와 후배의 가교 역할을 하던 인물이 사라지자 문단의 정취도 따라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는 것.

 

 

고 이문구 선생과 김성동 선생은 심심치 않게 한묶음으로 묶이곤 한다. 충남 보령 출신으로 고향이 같은데다 (출생은 이문구 선생이 6년 빠르다) 해방과 한국전쟁에 이르는 공간 속에서 둘 다 부친이 ‘좌익’ 혐의로 희생된 개인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감당하기 힘든 개인의 불행 속에서 당대 최고의 문장이 출현한다는 사실은 문학사의 아이러니다. 이문구와 김성동은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뎌내면서 정신의 근육을 키웠고, 그것을 발판 삼아 독보적인 문체를 완성했다.

 

 

그러나 두 거장이 도달한 문장의 봉우리는 다르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고 이문구 선생이 능청스런 충청도 사투리를 통해 동시대 서민들의 아픔을 해학적으로 그려냈다면, 김성동 선생은 구한말 우리 조상들의 계층별 언어를 “마치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재현해 냄으로써 ‘소리 글자로서 한글이 가질 수 있는 극한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는 것.

 

 

 

 

 

 

김성동의 이런 문학적 성취는 문체를 대하는 “결벽에 가까운 자세”의 산물이기도 하다. 문체에 관한 한 그는 한국문학의 거봉으로 일컬어지는 벽초 홍명희(1888~1968) 앞에서도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다.

 

 

“벽초의 <임꺽정>을 한국 문학의 최고봉 가운데 하나로 꼽는 평론가들이 많아, 그런데 문체만 놓고 보면 나는 절대로 그에게 후한 점수를 줄 수가 없어. 왜냐? 그는 구한말에 태어난 인물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당시의 우리 언어를 충실하게 재현할 수 있었거든. 당시 우리 말이라는 것이 계층별, 지역별로 다 달랐어. 그런데도 그는 계몽이 우선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황해도 말과 전라도 말, 지배계급과 중간계급, 평민과 노비의 말을 하나로 통일해 씀으로써 아름다운 우리말을 실종시켰지”

 

 

그는 ‘임꺽정’이 거둔 서사적 성취와는 별개로 벽초가 구한말의 계층별 언어를 작품 속에서 획일화한 것은 심하게 말하면 “범죄나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예 그럴 여건이 안되는 사람이었다면 문제가 안됐겠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전범(典範)을 남길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작가로서의 임무를 방기(放棄)한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것.

 

 

(절은 날의 김성동)

 

 

“이런 얘기를 꺼내자면 끝이 없어. 나는 컴퓨터도 안쓰고 TV도 안보는데, 예전에 어쩌다 사극 같은 걸 보게 되면 속으로 열불이 나. 모름지기 작가란 자기가 묘사하는 장면 속에 있는 느낌으로 작품을 써야 하는데, 드라마를 보면 조선시대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정치토론을 하고, 공주나 대비가 선비들을 아랫 사람 다루듯 하는 장면이 무시로 나와. 왕하고 맞먹었던게 조선시대 선비인데, 이런 정신과 문화를 모르니 허튼 수작을 하고 있는 거야”

 

 

노작가는 “기본적으로 언어는 계급의 산물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문체다운 문체를 구사할 수 있는데 최근 이런 의식을 갖는 작가들이 줄고 있다”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토지’ 의 작가 고 박경리 선생(1926~2008)으로부터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문장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라는 극찬을 들었던 김성동의 문체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김성동은 한 살 아래인 김훈(두 사람은 김훈이 문학담당 기자였던 시절 인연을 맺어 친구처럼 지낸다)과 더불어 ‘몸으로 글을 밀고 나가는 작가’로 통한다. 수공업자처럼 원고지를 한 칸 한 칸 메워나가고, 구한말 특정지역 특정계층이 썼을 법한 말 한구절을 재현하기 위해 며칠씩 밤을 새기도 한다. 대하소설 <국수>의 집필을 위한 자료조사비로만 수천만원이 들어갔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김성동 선생은 요즘 마음이 급하다. 대하소설 <국수>의 완결판 말고도 써야 할 글, 해야 할 일은 태산 같은데, 건강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평생 친구처럼 지내온 술과 담을 쌓은 지도 제법 됐지만, 노경에 찾아든 당뇨는 악성채무처럼 끈질지게 노 작가를 괴롭히고 있다. 지난달에는 치료차 일본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음을 실감할수록 노 작가의 문학혼은 오히려 뜨거워지고 있다. 멀리 궁예로부터 동학의 김개남을 거쳐 해방공간의 무명 빨치산에 이르기까지 그의 머릿 속에는 소설로 다뤄야할 인물과 사건들이 넘쳐난다. 거장의 펜은 아직 녹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계속)

 

 

[글 윤흥식 기자, 사진 남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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