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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감성

무언의 기도

은월 김혜숙 2015. 5. 21. 23:48


 

 

무언의 기도

 

                                 은월 김혜숙

 

저녁 한 끼를 같이하기 위해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싱긋 웃는 얼굴은 변함없었는데

여느 때와 다르게 마주한 모습은

눈초리가 내려가고 얼굴은 창백하며

말꼬리가 흐려져 있었습니다

 

벌써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다고 강조를 하면서

길 잃은 아이마냥 자꾸 엄한 소리를 내뱉고 웃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그보다

몇십년이 더 지났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그동안 찬물 몇 잔이었던가,

등 몇 번 돌렸던가,

눈 몇 번 흘겼던가,

서로의 고집으로 갈굼과 원망 몇 번이었단 말인가

 

오늘은 이것들이 저 한 사람의 푸념이 아니었기에

우린 소주를 나눠 마시며 그 몇 번이라는

문제의 잔을 연거푸 들이키며 제자리를 맴돌았습니다

 

결국 막차가 끊긴 시간

그를 택시에 실어 보내면서 집채만 한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돌아가는 사람의 등덜미는 웃고 있지만

어깨에 바람이 푹 꺼지면서 스르르 빠지는 소리를 보고야 만 것입니다

 

사랑이란 존재가 살면서 변하면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종착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행복이 어디쯤 있는지 우리도 알 길 없기에 때문입니다

깊은 마음의 여행 중인 그를 보면서 그저 기도 할 뿐

각자의 길이기에 우리가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말을 줄였습니다

그를 보면서 우리가 걸어온 길을 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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