銀月(은월) 시 ##스튜디오
무언의 기도 본문
무언의 기도
은월 김혜숙
저녁 한 끼를 같이하기 위해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싱긋 웃는 얼굴은 변함없었는데
여느 때와 다르게 마주한 모습은
눈초리가 내려가고 얼굴은 창백하며
말꼬리가 흐려져 있었습니다
벌써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다고 강조를 하면서
길 잃은 아이마냥 자꾸 엄한 소리를 내뱉고 웃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그보다
몇십년이 더 지났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그동안 찬물 몇 잔이었던가,
등 몇 번 돌렸던가,
눈 몇 번 흘겼던가,
서로의 고집으로 갈굼과 원망 몇 번이었단 말인가
오늘은 이것들이 저 한 사람의 푸념이 아니었기에
우린 소주를 나눠 마시며 그 몇 번이라는
문제의 잔을 연거푸 들이키며 제자리를 맴돌았습니다
결국 막차가 끊긴 시간
그를 택시에 실어 보내면서 집채만 한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돌아가는 사람의 등덜미는 웃고 있지만
어깨에 바람이 푹 꺼지면서 스르르 빠지는 소리를 보고야 만 것입니다
사랑이란 존재가 살면서 변하면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종착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행복이 어디쯤 있는지 우리도 알 길 없기에 때문입니다
깊은 마음의 여행 중인 그를 보면서 그저 기도 할 뿐
각자의 길이기에 우리가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말을 줄였습니다
그를 보면서 우리가 걸어온 길을 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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