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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남을 가을

은월 김혜숙 2017. 9. 3. 16:15

 

 

번잡한 세상을 푸르게 푸르게

가림막 덮어내더니 색을 빼며

한철 묵은 때 털어내는 작업 은밀함

그 많던 지상에 노래는 온데간데없이

뚝 그친 고함까지 무서운 적막 한 줄

그어가고

집도 절도 없이도 어디서나

자리 펴고 누워도 노숙한다

나무라 할 것 없다는 숲속 여치 마을

뉘라고 이 가을 팔아서

재산을 불린다 한들

그 또한 나무라 할 것 없는

너도나도 서로의 가슴에서 알밤

툭툭 밀어내는 언어와 낱말들은

못 참겠다 뛰쳐나오고 시인은 제자리인데

낯선 계절은 다시 찾아와 시를 빼 들고

하나씩 볏단 다발 묶어 스스로 걸어 나온다

기러기도 길 떠나며 하늘에 놓고 가는

시 타래 한 뭉치

 

 

< 쓰고 남을 가을 > -은월 김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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