銀月(은월) 시 ##스튜디오
첫눈 오는 날 본문
첫눈 오는 날
누군가를 떠올려야 하는데
누군가라는 추억이 난 없다
그 누군가가 꼭 이성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난 80년대 초 어린 시절
사직동 골목길에 남루한 그 보헤미안의
누더기를 걸친 빙판 위를 아스라하게
걷고 또 걷는 한 사내만 생각난다
그가 무엇 때문인지 집을 나와
온 세상 전부가 안방이고 온 계절이
자신의 계절인 만큼의 욕심을 부리는 것인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도 한땐 자그마한 공간 안에
온 가족이 자신만 기다리는 숨이 막히는
자그마한 집에 살다 제비 새끼 다 키운 날인지
참새떼 키운 때인지 모르지만
그가 버린 것인지
그 알량한 가족이 버렸는지는 모르지만
한겨울 골목길 군밤 장사치도 길목 호떡집도
지나쳐 가면서 그저 바닥에 흘린 것이 아까워
입에 갖다 대며 살고
줄 것도 없지만 억지로 구걸도 하지 않는
첫눈 오는 날 그 화려했던 나목에 잎사귀
다 빼앗기고 헐벗은 나뭇등걸에 기대
땅에 떨어진 담배 한 개비를 물고 갔던
그 의문의 사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지만, 추운 겨울날 얼어 죽었다
어린 나에겐 첫 충격이고 첫눈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생각났다
< 첫눈 오는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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